[창작]수라기 2부 습공(習功) 1장 등(登)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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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슈어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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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욱! 후욱..
거친 숨결, 가쁜 듯한 숨소리가 적막속에서 휘돌고 있었다.
비스듬히 손을 들어 상반신을 막는 듯하였고 좌수는 허리춤에 정권을 감아 붙였다. 한발은 앞으로 가볍게 하여 언제든지 앞차기가 가능하게, 뒷다리는 상당부분의 체중을 실은 상태에서 단단히 버티고 서있는 상명군. 날씨 탓인지 전신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후우..이 새끼, 무술 한다 깝작거리더니..제법 하는데. 감쪽같이 속았어, 감쪽같이..이 개같은 놈이 그동안 봐줬더니 이 새끼가..후욱..후욱.."
꽤 지친 듯 숨을 거칠게 내뱉으며 아환을 노려보고 있는 상명군, 두 눈에 살기가 가득하였다.
그 살기 어린 시선이 멈추는 곳, 일장 정도의 거리에 아환이 서 있었다.
아환 역시 상명군과 별 다르지 않았다.
한 팔을 굽히고 머리위로 올려 두부를 보호하고 오른쪽 발을 굽히고 위로 들어 올려 무릅을 허리 부근에 올린 상태에서 비스듬히 옆으로 향한 자세. 비오듯 땀을 흘리고 있는 것은 아환도 마찬가지였다. 굳게 다문 입술과 부릅뜬 눈으로 상명군을 노려보며 코로 바쁘게 숨을 들이마시고 있었다.
'헛, 과연 실전과 수련과의 차이가 이렇게 차이가 나는군. 그리 어렵지 않게 맞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그렇다고 내기를 쓰면 안되고..후..'
상명군이 천천히 좌측으로 몸을 움직였다. 횡보로서 자세를 유지한채로 아환의 측면으로 돌기 시작하였다. 번뜩이는 눈빛이 조금의 틈이라도 발견하려는지 예리하게 아환의 전신을 살폈다.
"텃!"
아환이 들었던 발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왼발을 뒤차기 형식으로 쭉 뻗었다.
빠른 일격!
타탁!
상명군이 오른쪽 전박으로 아환을 발차기를 쳐낸 다음 정권을 내지르자 아환이 다시 상반신을 숙이며 좌측 발을 내려 놓고 단영각(斷影脚)의 초식으로 상명군의 정강이 부분을 쓸어갔다 상명군은 급히 손을 거둬들이고 신형을 띄운 상태에서 나한장의 기법으로 아환의 등 부위를 양손으로 내리치고 아환도 같은 나한장의 수법으로 마주쳐갔다.
"우욱"
내기를 쓰지 않은 상태이고 상대는 약간의 발경을 첨가한 상태, 아환이 가볍게 신음을 흘리며 뒤로 세걸음 물러섰다.
"독사출동"
독초(毒招)! 손가락을 구수형태로 뾰족하게 만들어 독사가 굴속에서 빠져 나오듯 혈도를 가격하여 심각한 타격을 입히는 중수법. 비록 강호에 널리 알려져 있긴 하지만 그 초식의 살기 짙음에 생사를 건 싸움이 아니면 잘 쓰이지 않는 수법이었다.
"헉!"
아환의 상반신을 급하게 뒤로 젖히며 두팔을 팔방풍우의 자세로 마구 휘둘러 방비를 하며 뒤로 물러섰다. 조금전의 격돌에서 약간의 내상을 입었는지 안색은 다소 창백해져 있었다.
"선풍각(旋風脚)!"
승기를 잡은 듯 연달아 아환을 공격하는 상명군, 서있는 상태의 사람을 공격하는 선풍각의 형태를 몸을 옆으로 만들어 위에서 내려찍듯이 공세를 취하였다. 아환이 놀라서 두 팔로 안면부위를 보호하였다.
퍼퍼퍼퍽!
연이은 네번의 가격이 아환의 두팔위로 떨어졌다.
"크윽!"
아환이 두 팔을 움켜잡으며 뇌려타곤의 초식으로 데굴데굴 굴러 위기를 벗어났다. 그리곤 재빨리 일어나 자세를 가다듬었다. 방금의 공세로 두 팔이 얼얼한듯 슬슬 전박부를 매만지며 아환은 다시금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으하하하!! 비루먹은 개꼴이구나. 그따위 실력으로 이 어르신에게 대들려고 하다니..으하하하.!"
방금전의 우세로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하는 상명군이 노골적으로 웃음을 터뜨리며 아환을 향해 조소를 보냈다.
"이엽!"
풍진뢰(風振雷)! 풍도십사식의 가장 강맹한 위력을 가진 초식! 공세일변도! 아환이 상명군에게 밀린다 생각하였는지 강공으로 맞선다.
휘~잉! 휙!
바람소리가 상명군의 귓가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하하하! 이 정도 가지고.."
껄껄껄 웃는 상명군의 입과는 달리 상명군의 내심은 상당히 긴장되어 있는 상태였다. 권풍이 스치고 나선 부위가 얼얼하게 쓰라림이 느껴지는 것을 보아 제대로 한방 걸리면 자신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싸움 역시 경험이 칠이고 실력이 삼이라 하였다. 상명군이 바짝 긴장한 속마음과는 달리 입으로는 아환을 놀리면서 계속하여 아환의 신경을 거슬렸다. 평소에 무공이라면 오직 무이관에서 틀에 짜인 형(形)의 수련과 관내의 수련생들과의 어설픈 비무 그리고 스스로 하는 내기의 수련과 근력을 익히기 위한 몇가지의 동작을 열심히 익혔다고 하나 변수가 순간순간 존재하는 이러한 결전에서는 큰 도움을 받지 못하였다.
'흐윽! 실전이 이렇게 중요하다니..'
내심 서둘러서 일을 그르치는 게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생기는 아환, 하지만 화살은 이미 시위를 떠나 과녁을 향하여 날아가고 있었다.
"엽"
크게 정권을 내지른후 아환은 뒤로 물러섰다.
아환의 정권을 간단히 피하고 뒤이어 들어올 공격에 반격을 준비하였던 상명군, 아환이 갑자기 뒤로 물러서자 일순 초식을 내치지 못하고 자세를 새로 잡았다.
"이제 밑천이 다 떨어졌나? 이 쥐새끼 같은 놈!"
처음에 손속을 교환하였을때에는 아환의 수준을 잘 몰랐기에 당황하여 허둥지둥한 관계로 팽팽하던 결투는 이제 상명군에게 상당히 기울어져 있는 것이 확연히 드러났다.
"이 새끼가 이 정도 가지고 내게 덤볐단 말이지. 이 육시할 놈의 자식! 명년 오늘을 네 제삿날로 만들어주마. 물론 그 제사는 네 조카가 해 주겠지..큭큭큭!"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아까 떨어진 노리개만 쓰다듬고 있는 아환의 누나를 힐끗 보면서 상명군이 이죽거렸다. 그러고 보니 아환의 누나라는 여인이 어느새 상명군의 근처에 앉아 있었다. 처음 겨룰때에는 아환의 뒤에 있었으나 둘이 몇번의 손속을 나누고 몸을 수차례 교환한 후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여인이 상명군과 불과 두자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이 년 때문이지..이 쌍년!"
퍽!
자신에게 감히 대들지 못하는 존재가 쳐 오르는 것에 대한 심한 분노가 여자를 보니 다 저 년으로 인해 내가 지금 이 꼴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발로 여인의 등을 냅다 걷어찼다.
"아악!"
앞으로 푹 고꾸라지는 여인!
꿈틀! 아환의 눈썹이 일그러진다. 비록 자신의 계책에 의하여 이러한 상황을 만들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자신과 관계를 가졌었고 어찌되었든 아환이 보살펴준 여인. 그 여인에 대한 학대에 아환의 뇌리속에선 진청청의 모습이 겹쳐 올랐다.
사내들 속에서 희디흰 동체, 벌거 벗은 몸으로 온갖 희롱을 당하던 자신의 모친..
아환의 눈길이 붉게 물들었다.
"쯧쯧쯧.."
"저런.."
"어허..어찌 저럴수가.."
주위에서 아무 말도 없이 빙 둘러서서 싸움을 구경하던 군중들도 상명군의 행동이 너무 했다 싶은지 한마디씩 거들었다. 평소 상명군이 행패가 심하기는 하였어도 군소리 하지 않던 사람들이 아환에 대한 동정과 여인이 처한 불쌍한 처지가 많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였다.
"그래! 이 년이..헛!"
쓰러진 여인의 등을 밟고 기고만장하며 주위를 둘러보던 상명군, 갑자기 신음을 내뱉었다.
검집! 화려하진 않지만 담백한 모양의 검집이 지금 여인의 등을 향해 발을 뻗은 상명군의 발과 여인의 등에 멈추어져 있었다.
검집은 상명군의 발에 대어서 상명군의 발을 막고 있었으며, 상명군은 얼어붙은 듯이 꼼짝도 하지 않고 자신의 발을 막은 검집을 따라 시선을 위로 올리자 그 검집을 잡고 있는 교수, 그 검집주의 손과 팔을 거쳐 얼굴까지 상명군의 눈으로 들어 왔다.
단정히 틀어 올린 아름다운 검은 머릿결과 반듯하고 흰 이마, 가늘지만 곱게 그린 듯한 눈썹 밑으론 반짝이는 눈빛에 어울리는 봉목, 오똑 솟은 코..붉은 입술사이로 살짝 내비치는 하얀 치아..갸름한 턱선이 목으로 이어지는...
"항산선녀.."
신음처럼 새어나오는 검집의 주인..검후가 어느새 인지 검집채로 상명군의 발을 막고 있었다.
처음부터 검후가 이 싸움을 구경한 것은 아니었다. 평소 다른 이들의 일에 끼어드는 것을 별로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검후의 성품으로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는 것은 그리고 기합소리와 격투소리등은 검후에게 있어서 큰 흥미를 끼치지 못하였다. 만약 상명군과 아환의 싸움이 다른 곳에서 일어났다면 검후는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아환의 의도였는지 아환과 상명군이 맞붙은 장소는 포목점 앞, 바로 검후과 매월 고을로 들어와서 항상 들리는 곳이었다. 따라서 검후는 좋든 싫든 포목점에 오는 한 이들의 결투를 볼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무림인이라 간만에 보는 대전(對戰)에 얼핏 보아서 여인이 쓰러져 있었고 조그맣게 사람들이 속삭이는 말을 들어보니 대충 두 사람이 싸우는 이유를 알게 되었고 급기야 상명군의 행동에 심중에 분노가 일어 출수를 하였던 것이다.
"나는..소생은.."
입이 굳었는지 상명군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였다. 검후의 실력도 실력이었지만 지금 검후의 눈가에 맺혀있는 싸늘한 감정이 그대로 상명군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무슨 짓인가요? 지난 번에도 한번 제가 교훈을 내린 적이 있었지요."
"선녀..소생은 단지.."
"사내라면 기개가 있어야 하고 자신보다 나약한 이들을 돌볼줄 알아야지 핍박하고 괴롭히면 되겠어요? 더군다나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당신은 꽤 오랫동안 이 남매에게 피해를 준 것 같은데.."
서릿발 같은 음성이 고혹적인 입술에서 흘러 나온다. 다분히 정석적인 말투 지만 그 말을 듣는 상명군으로서는 검후의 기세에 잔뜩 기가 눌린 상태였다.
"오늘은 당신에게 교훈을 강도 있게 해야 될듯 싶네요."
그러면서 검후는 검을 거두는 가 싶더니 다시 이리 저리 흔든다.
"흐윽! 욱!"
눈으로 식별되지는 않지만 무형의 기운이 상명군의 전신을 휘감는다 싶더니 상명군이 서있던 자리에서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별다른 초식을 펼치지 않고 단순히 내기만으로 검기점혈(劍氣點穴)을 쳐내어 상명군에게 금제를 가하는 검후였다.
"이제 다시는 악행을 하지 못할거예요."
말이 끝나자마자 몸을 획돌려 뒤로 사라지는 검후! 그 뒷모습을 아환이 쏘아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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