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경험담

[창작] 수라기(獸羅記) 제1부 적무환(赤無患) 마지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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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슈어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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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아환은 누나라 불리우는 여인과 함께 저자거리로 나섰다.

한달쯤 전부터 아환은 누나의 정신건강을 위하여 종종 밖에 나서기 시작하였다. 아환이 누나와 정착한지 어언 2년여..아환은 그 동안 제 정신이 아닌 누나를 보호한다고 하여 밖을 일절 데리고 나서지 않았으나 얼마전부터 누나가 호조를 보인다고 하여 이삼일에 한번씩 바깥 바람을 쐬어 주곤 했다.
들녁에 나서서 꽃과 나무들, 그리고 상쾌한 바람에 하늘거리는 여유로운 풍경을 보여주는 것을 반복하곤 하는 아환, 돌아설때에 시장거리로 들어가서 장신구나 의복, 그리고 기타 잡화를 구입하고는 하였고 객점에서 제법 맛난 과자나 기타 음식을 사주곤 하였다.

오늘 역시 아환이 누나를 데리고 거리로 나섰다. 이제 막 봄의 막바지에 접어들어서인지 날씨가 화창하다 못해 조금 덥다는 느낌을 가질 정도..아환은 누나를 곱게 단장하여 차려 입히고 길을 걷고 있었다.

"어이, 아환 나왔구나."
"오늘도 누나를 데리고 나왔네."
"누나는 좀 어떠냐? 아환."
한마디씩 아환에게 말을 붙이는 사람들. 아환이 평소 마을 사람들에게 착실한 모습을 보여왔기에 상가진 사람들 대부분이 아환을 좋아하고 친근하게 대하였다. 거기엔 아환이 현재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을 묵묵히 잘 견디고 누나를 위하여 정성껏 이바지하는 모습이 좋게 그려져 있는 것도 한 몫을 하였다.
"예." 꼬박꼬박 목례를 하면서 길을 가는 아환. 예를 잃지 않고 마을 사람들을 성의껏 대하는 듯한 자세가 묻어나온다.

"오늘을 무얼 살려고?"
아환이 한 포목점에 들어서자 포목점 주인이 반색하며 아환을 반긴다.
"예. 누나에게 노리개 하나 선물할까 합니다."
"그래?"
아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인이 안으로 들어가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온다.
"여기서 한번 골라봐."
주인이 꺼내온 조그마한 상자, 그 상자를 여니 형형색색의 노리개가 눈에 들어온다. 빨갛고 파란 원색 계열 부터 여러 색이 조화를 이룬 것들 또는 담백한 상아빛이나 백색을 띈 고급스러운 노리개들도 눈에 띈다.
"이거 얼맙니까?"
그 중 제일 수수하고 값싸보이는 노리개를 아환이 하나 집어들었다.
"응?"
주인은 대답을 하다 말고 다른 것을 하나 꺼내 든다.
"그거 말고 이거 어때?"
주인이 꺼낸 것은 분홍빛과 상아빛이 조화를 이룬 고급품에 속하는 귀해보이는 노리개였다.
아환이 주인이 제시한 것을 받아들고 뚫어지게 쳐다보며 만지작만지작 거렸다.
"휴~"
아환이 한숨을 내쉬며,
"아니요. 이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쉬운 느낌이 묻어나는 말투로 아환은 처음 만졌던 값싼 노리개를 집어 들었다.
"아니야. 이걸루 가져가. 내가 싸게 줄께."
아환이 금전적인 부담으로 망설인다고 생각한 주인은 성실한 이 친구에게 동정심이 생겨서 아환에게 노리개를 밀어 붙였다.
"나뭇짐으로 천천히 갚아."
"어르신..그래도 되겠습니까?"
미안한 기색이 완연하지만 노리개를 손에 꼭 쥔채로 아환은 주인에게 반문하였다.
"그렇대두.. 자! 이 걸루 가져가게. 잠깐만"
포목점 주인이 진열대 밑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낸다.
"여기다가 담아가."
"어르신..정말 고맙습니다."
주인이 내민 주머니 역시 몇푼을 족히 주어야할 값나가는 물품임을 안 아환, 주인에게 연신 감사한듯이 고개를 꾸벅이며 감사의 예를 올렸다.
"허! 뭘 그런 것을 가지고..자! 어서 가보게. 누이가 저기 기다리고 있네."
아환의 누나는 멀뚱히 주인이 가져온 상자속의 노리개만 쳐다보고 있었다. 정신이 온전치 않아도 여자는 여자인지 가지각색으로 놓여 있는 노리개를 몽롱한 눈빛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포목점 주인은 아환에게 취한 자신의 행동에 흡족하였다.
"자자!! 나뭇짐 몇단 해오면 되니 걱정말고.."
"예. 어르신. 감사합니다."
자신의 누나가 노리개를 한참이나 쳐다보고 있는 것을 눈빛을 반짝이며 지켜보던 아환, 주인에게 다시 예를 드린후 누나를 재촉하여 포목점을 나섰다.

아환이 누나를 데리고 발을 재촉하여 집으로 향하려 하였다. 그때,
"어이! 처남 왔는가?"
어느새 나타났는지 상명군과 그의 패거리들이 아환의 주위로 다가왔다.
툭!
상명군이 손을 뻗어 아환의 누나의 둔부를 툭 친다.
"그래, 너도 잘 있었고..하하하!"
상명군을 비롯한 불량배들이 아환과 그의 누나의 주위를 빙 둘러서 낄낄대며 희롱을 시작하였다. 그 중 몇몇은 손을 뻗어 아환 누나의 젖가슴이니 엉덩이니 심지어는 비처까지 쓰다듬으며 농을 지껄여대었다.
불끈! 아환의 두 주먹이 움켜쥐여진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분노로 가득차 보이는 두 눈엔 핏발이 올랐다.
사내들이 그러한 아환의 반응에는 신경도 쓰이지 않는 듯 계속하여 아환의 누이를 희롱하였다.

"이제 그만 좀 하지."
보다 못한 포목점주인이 어느새 근처에 왔는지 불량배들에게 한마디 던진다.
주변에 언제 모였는지 꽤 되는 인파가 그들을 에워싸고 있었다.
웅성웅성 거리며 한마디씩 하고 몇몇은 불량배들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행동을 개탄하고 있었다.
거기에 더더욱 용기를 얻는 듯,
"그만큼 괴롭혔으면 되지, 이제 그만 하시게들."
다시금 각다귀들의 추행을 막아댄다.
퍼억!
"이 새끼가 감히.."
상명군이 발길질로 포목점 주인을 걷어찼다. 더이상 묵과하다가는 자신들의 권위에 손상이 간다고 판단한 상명군은 일단 무력으로 위압을 하기 시작하였다.
딱! 퍽! 퍼억!
"우욱. 윽!"
포목점 주인은 잔뜩 웅크린채로 각다귀들의 발과 주먹 세례를 몸으로 받아 들였다.
얼마간의 폭행을 한 후,
"에이! 기분도 잡쳤는데 술이나 한잔하러 가자."
퉤!
상명군을 위시한 일당들이 흥이 식었는지 그리고 주위의 사람들의 시선도 좀 부담스러웠던지 침을 뱉고는 자리를 떴다.
"비켜 비켜!"
거칠게 행인들을 헤치며 사내들이 몰려 한 곳을 향해 사라져 갔다.

"죄송합니다. 어르신!"
자신때문에 포목점 주인이 욕을 봤다 생각되었는지 아환이 무척이나 죄송스럽다는 표정으로 주인에게 사죄를 하였다.
"아니네. 우리가 진작 나섰어야 하는 것을..어이구, 하늘을 무얼 하시는지 저런 것들을 환한 대낮에 멀쩡히 활보하게 하시고.."
주인이 한탄을 하자,
"그러게 말이여."
"저런 놈들은 다 죽어야해."
"무이관의 상대인이 출타중이니 저놈들이 더하네 그려.."
주위의 구경꾼들이 맞장구를 치며 거든다.
얼마의 시간이 건달들의 성토시간으로 변하였다.

이윽고, 아환이 포목점 주인에게 인사를 드린다.
"조리 잘 하십시오."
"어서 들어가보게, 난 신경쓰지 말고.."
"그래, 어서 들어가. 자네도 참.."
"누나를 잘 보살펴주고.."

시간이 흘러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아환의 방, 아환은 무언가를 골몰히 생각하고 있는 듯 보였다.
'오늘이 초사흘 이제 이틀 남았구나.'
날짜를 하루하루 기다리던 아환, 그가 기다리는 시간이 이제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7)

오늘, 오월 초 닷새!

아환은 평소와 비슷한 아직 동이 뜨지 않는 시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서 침구를 정돈하고, 방안을 정리하였다.
단정히 정리된 방안에서 아환은 한가운데 정좌를 하고 앉아 무언가를 입으로 되뇌이기 시작하였다.
'황제의결(皇帝意訣)'
한참을 구결을 되새이던 아환, 두눈을 감고 명상에 빠져 든다.
아환이 명상에 몰입하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아환은 명상에서 깨어나서 천천히 자리에서 신형을 일으켰다.
그 순간, 아환의 전신주위에서 기이한 기도가 일어났다. 웅장하며 강인한 듯한 그러면서 많은 것을 포용할 듯한 군자의 기도와 위엄이 미약하나마 아환의 몸에서 풍겨나왔다.
'이제 이성 정도의 성취를 이루었구나. 이성의 성취를 가지고 얼마나 검후에게 접근할 수 있을까?'
솔직히 아환은 자신이 서질 않았다. 지난 번 검후를 보았을때 느껴지던 기파..무예의 기도는 아직 아환이 점치기엔 검후가 너무나도 높은 위치에 올라 있었고, 단지 현녀심의 느낌만 접한 것으로도 현재 검후의 성취도를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
'거의 구성에 다다른 모습이었어. 이제 십성을 성취하여 현녀심을 완성시킬텐데..너무 이른 것은 아닐까? 아니면 검후가 지금 경지의 전에 있을때 어떡해서든 찾았어야 하나? 아니야. 아니야. 내가 찾는다해서 찾을 수 있는 인물도 아니고 성취라고 할 수도 없는 황제의나 생각이 어릴때 그리고 무공의 기초가 전혀 없을때에 만났으면 접근도 하지 못하였을 것이야.'
아환은 마음을 고쳐 먹는다.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났다. 적어도 검후를 과녁으로 하는 한 재장전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과녁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 그 것만이 나의 계획과 차후의 '나'를 만드는 길이다.'
길게 심호흡을 하는 아환, 끌어올린 황제의를 서서히 거둔다.

아환은 방을 나서 자신의 누나라 불리운 여인의 방안으로 들어 갔다.
'당신이 누군지 모르겠으나 지금까지 무척 고맙구려. 당신덕으로 이곳에 자리를 잡고 기본이나마 이 정도의 나를 형성할수 있었소. 오늘이 당신이 나와 함께 한 시간 중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오. 나를 용서하라는 말따위는 하지 않겠소. 이 것도 다 그대와 나의 연(緣)이라면 연이 아니겠소?'
아환은 누워있는 여인의 등에 장심을 붙인다. 그리곤 진기도인으로 자신의 체내에 잠재되어 있는 내기를 여인에게 불어 넣는다. 그러자 은은한 향기가 여체에게서 배어나왔다.

"음" 아환의 입에서 신음성이 흘러 나온다. 여인의 몸에서 흘러 나온 향기. 육향이라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향료나 향유에서 흘러 나오는 향기와도 거리가 있는 향기, 왠지 모르게 욕정을 유발하는 향기, 처음 아환이 이 여인을 만났을때 맡았던 그 기향이 지금 여인의 몸에서 미약하게 흘러 나왔다.
'이 향기는 무엇이길래 이렇게 사람의 욕정을 뒤흔드는가? 그리고 왜 이와 유사한 향기가 내가 운기를 할때 내게서 흘러 나오는 것일까? 우연히 발견한 이 기향으로 상운진을 보다 쉽게 정복할 수 있었지..후후'
아환은 진기를 거두었다. 그리고 방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며 이 향기가 방에서 사라지게 하였다.
'이제 세 시진 가량 남았구나. 그래. 한번 해보는 거다.'

시간이 흘러 한 낮이 되어갔다. 서둘러야 했다. 상명군등이 이 곳에 오면 그 동안 세운 계획은 언제 다시 올지 기약할 수 없었다. 그러기 전에 미리 계획한 장소에 가 있어야 했다.
아환은 간단히 점심거리로 감자를 두어알 먹고 여인에게도 한알 반 정도 먹였다. 일반 서민이 흔히 먹는 감자 점심으로 끼니를 해결한 다음 아환은 여인의 방으로 들어갔다.
여인의 방에는 아환의 누나라 불리우는 여인이 다소곳이 자세를 잡고 앉아 있었다. 아환은 손을 품속에 넣어 무언가 작은 주머니를 꺼내었다. 얼마전에 구입한 노리개가 들어있는 주머니..
아환은 주머니에서 노리개를 꺼내었다. 분홍과 상아빛이 조화를 이룬 여염집 여편네들이 좋아할 만한 노리개를 손에 쥐고 잠시 살핀다음 노리개를 여인의 치마께로 가져갔다. 그리고 양손을 이용하여 노리개를 여인의 치마에 달아 주었다. 가는 실을 이용하여 노리개를 고정시킨 아환, 무슨 생각인지 단단히 고정되었다 싶은 노리개를 손으로 살짝 잡아 당겼다.
투툭!
실밥이 튿어지는 소리.
노리개의 뒷쪽의 실밥이 터져나갔다. 어느 정도 당긴듯 싶더니 아환은 손을 멈추고 노리개를 들추어 노리개가 달려있는 치마와 노리개사이를 살폈다. 그나마 가는 실이 몇 올 만이 노리개와 치마를 지탱해주고 있었다. 앞에서 보면 잘 모르겠지만 거의 달랑달랑한 상태..
아환은 노리개에서 손을 조심조심 떼었다.

뚫어지듯이 여인의 눈을 노려보던 아환,
"넌 지금 포목점으로 가서 구경이나 하고 있어라."
명령을 한다.
몽롱한 눈으로 여인이 부시시 몸을 일으켰다. 스르르 미끄러지듯 여인이 방문을 열고 마당에 내려 섰다. 그리곤 신을 신더니 무작정 집밖을 나서기 시작하였다.

'오시(午時)가 될려면 이제 반시진 남짓하구나. 아칠 형이 그랬지. 검후가 반년 동안 한번도 그 시간을 어긴 적이 없었다고..후후후'


저자거리를 기웃거리는 미모의 한 여인이 마을 사람들의 눈에 띄었다. 누군가 하던 마을 사람들이 이내 아환의 누나인것을 알고는 그냥 모른체하고 그 여인이 하는데로 가만히 놔두었다. 특별히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것도 아니고 또 아환이 이제 금방 나타나리라 생각했고 아환의 누나가 꽤 이쁘장한 생김새를 하고 있었기에 별 간섭을 하지 않고 여인을 쳐다보기만 하였다.

아환의 누나가 발걸음을 멈춘 곳은 지난번 아환과 노리개를 같이 샀던 포목점이었다. 아환의 누나는 포목점의 앞에 물끄러미 서서 포목점에 진열되어 있는 형형색색의 각종 옷감과 장신구 등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 아환의 누이가 왔구려..오늘은 혼자 오셨는가? 그래 무얼 구경하려고?"
며칠전에 이 여인덕분에 혼찌검이 났는데도 이미 그일은 까맣게 잊었는 듯 주인이 반색을 하며 여인을 맞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대답도 않고 물끄러미 진열대만 쳐다 보았다.
"쯧쯧쯧..아리따운 처자가 어이하여..."
안타까운 듯 혀를 차는 포목점주인, 무슨 생각이 떠 올랐는지 바로 안색이 변하여 아환의 누나에게 포목점안으로 들어오라 한다.
"이리 들어와서 구경하도록 해요."
묵묵부답! 반응이 없이 여인은 몇몇 장신구만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어허! 이리 들어오래두.."
"어! 얘가 여기 또 왔네. 오늘은 혼자 여기 왔나 보네?"
미쳐 주인이 여인을 가게안으로 끌기도 전에 어느새 상명군의 패거리들이 눈에 띄었다. 아직 우두머리인 상명군은 나타나지 않을 듯 했다.
"이게 겁도 없이 이런 길을 혼자 다니네? 주환, 이 자식이 소중한 자신의 누나를 이리 방치하다니 이 자식이 좀 봐주니 정신을 못차리네."
말은 그렇게 하며 여인의 주위를 감싸며 선다.
"이리와 봐." 한 사내가 여인의 팔을 잡아 끌어 당겼다.
여인이 끌려가는 듯 하더니 사내가 손을 놓자 다시 포목점의 진열대로 되돌아 간다.
"허! 이 것 봐라."
기가 차는 듯 사내가 여인을 획 끌어 당겼다.
"여기서 봐. 이 년아."
여인을 끌어 당겨서 가운데 쯤 데려 놨다. 그리고 손을 놓자 여인은 다시 발걸음을 옮겨 포목점으로 향한다.
"이게 지랄하네. 에잇!"
사내들 중 하나가 같잖다는 듯이 여인의 젖가슴을 꽉 움켜쥐고 획 끌어 당겼다.
툭.
무언가가 끊어지는 소리.
분홍과 상아빛이 조화를 이룬 노리개가 여인의 치마 춤에서 떨어져 땅에 뒹굴었다.
"허! 요것 봐라. 금월이년이 좋아하겠네."
사내들 중 하나가 떨어져 있는 노리개를 주어들며 키득거렸다. 아마 금월이라함은 또다른 기생이나 이 들에게 몸을 굴리는 처자이리라.
"주제에 안 맞게 이런 것을 차고 다닌다. 참 내!"
사내들은 기가 찬 듯 같잖다는 시선으로 여인을 쏘아봤다.
"아아아아앙"
문득 무언가가 허전한지 치마 춤을 이리저리 뒤지던 여인이 사내의 손아귀에 들려 있는 노리개를 발견하자 괴성을 발하며 사내에게 달려 들었다.
"엇! 이게"
후익!
거친 동작으로 여인을 내치는 사내,
"이 년이 그동안 그렇게 뒤여워 해 주었으면 되었지. 이런 것은 네년이 가지고 있을 물건이 아냐."
"암! 암!"
지들끼리 맞장구를 치며 키득대었다.

퍼-억!
노리개를 쳐들고 키득대던 사내 하나가 갑자기 앞으로 고꾸러졌다. 갑자기 당한 일이어서인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는 사내의 신형, 그 뒤에 아환이 붉어진 얼굴로 씩씩대며 손에 몽둥이를 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허! 이 새끼가..야이 개새끼야!"
옆의 사내 하나가 아환을 보고 욕설과 함께 주먹을 날린다.
휘~익!
아환은 자신에게 옆으로 돌아서 들어오는 주먹을 상체를 뒤로 살짝 젖혀서 피하고 사내의 주먹이 지나가며 드러나는 뒤통수에 몽둥이의 손잡이 부분을 잡고 그냥 내리 찍었다.
"억!"
뒤통수를 잡으며 웅크려 앉는 사내.
"저 새끼 잡아!"
평소에 자신의 눈아래에 있는 보잘 것 없다 본 존재의 뜻밖의 반격에 화가 치민 사내들이 소리치며 아환의 주위를 포위했다.
"이 새끼가 그동안 보살펴준 은혜도 모르고.."
"저 새끼 밟아!"
"이젠 더 이상 못참는다. 그 동안 네 놈들이 누나를 능욕한 것도 모자라.."
서로간에 용서할 수 없다는 듯 번들거리는 눈에 살기를 담고 팽팽히 대치하기 시작하였다.

구경 중의 으뜸은 싸움구경과 불구경이라 하였다.
툭닥거림이 시작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주위에는 온 마을 사람들이 다 나왔는 듯 웅성거리며 싸움터의 울타리를 형성하고 있었다. 관객 나름대로 또 이 상황에 대한 수군거림이 계속되고..
"이 새끼..명년을 네 제삿날로 만들어주지."
에잇!
어디서 귀동냥을 들은 것지 어설픈 육합권이 날아들었다.
꽉 움켜쥔 정권이 빠르게 아환에게 날라왔다. 아환이 살짝 고개를 옆으로 비틀자 주먹은 아환의 귓가를 스치고 귀옆을 지나갔다. 그 헛점을 아환이 놓치지 않고 아환은 사내에게 바싹 붙어 들어갔다. 한 팔을 머리와 어깨사이로 잡고 아환은 달려들며 무릅을 세워 사내의 낭심을 쳐 올렸다.
"어걱!"
눈이 뒤집히며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사내..알이 한두개쯤 터진듯..
"이 새끼가 무술한다고 무이관을 드나들더니 제법 눈동냥을 익혔구나."
처음에 뒤를 까인 사내와 뒤통수를 찍힌 사내를 포함하여 세 명의 각다귀들이 아환을 둘러 싸고 있었다.
만만치 않다고 여기었는지 쉽사리 덤벼들지 못하고 주위만 뱅뱅 맴돌고 있었다.
아환은 몽둥이를 곧추세우고 좌우를 살피며 정면의 사내에게 몽둥이 끝을 겨누었다. 불끈 힘줄이 아환의 팔뚝에서 솟아올랐다.

"에잇!"
아환이 달려들며 몽둥이를 휘둘렀다. 횡소천군이라할까? 여하튼 몽둥이를 옆으로 뉘어 정면의 사내를 쓸어갔다.
"어어..윽!"
미처 충분한 대응을 하지 못한 정면의 사내가 옆구리를 부여잡고 뒤로 주춤 물러섰다.
"이 새끼가 비겁하게 무기를 들고.."
다수가 한명을 향하는 것은 정당하고 무기를 든 것만 비겁한 것인지..

아환이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몽둥이를 겨누었다.
"엇! 이 새끼 봐라. 덤벼 덤벼..이 호로자식아. 누이에게 빌붙은 놈아!"
발로는 연신 뒷걸음질치면서도 호기를 부리는 처음에 뒤통수를 까인 사내. 입에서는 쉴새없이 욕지거리와 충동질이 쏟아져 나온다.
아환이 손에 들고 있던 몽둥이를 허리춤에 꽂았다. 그리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풍영섬!"
풍도십사식. 무이관의 무예가 아환의 손에서 펼쳐 졌다.
빠르게 정권이 앞으로 쭉 뻗는다.
빡!
정통으로 이마를 격중당한 사내.
앞이 노랗게 변하고 고개가 뒤로 젖혀진 상태로 뒤로 쓰러졌다.
정권을 갈무리하면서 상체를 아래로 숙이며 뒤에서 지탱한 발을 위로 차 올렸다.
"풍영각!"
두다리를 교차하며 돌려차기를 수차례 반복하자 발끝에 걸린 사내의 턱이 두세번의 가격에 금방 피투성이가 되었다.
"으윽!"

일단의 격투라 할 수 없이 아환의 일방적인 우세. 네 사내는 모두 쓰러져 있거나 웅크린 상태로 원독에 찬 눈 빛으로 아환을 쏘아 보고 있었다.
"속이 시원하네! 아환, 더 혼내주거라!"
"그래. 아환. 네가 최고다."
"아환! 훌륭하다!"
마을 사람들도 평소 눈에 가시인 이 각다귀들이 당하는 모습이 통쾌하였는지 하나 같이 아환을 응원하였고 아환이 승리하는 듯한 모습이 보이자 대리만족을 얻는듯 저마다 한마디씩하며 아환을 지지하였다.
마을 사람들의 성원을 한 껏 받으며 아환은 서서히 자세를 풀었다. 그리곤 무심히 주위를 살폈다. 아환의 시선이 주위에 울타리를 만들고 있는 군중들을 한번 가볍게 살피고 다시 쓰러져 있는 사내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별다른 표정이 나타나 있지 않은 아환의 안색과는 달리 지금 그의 심중은 무섭게 진동하고 있었다.
'검후다! 검후가 오고 있다.'

언제 나타난 것일까? 사람들이 빙 둘러 있는 울타리의 외곽, 저기 길의 초입에 검후가 천천히 걸어 오는 모습이 보였다. 화려한 은의의 비단 옷자락을 휘날리며 미끄러 지듯이 마을로 들어오는 절세의 자태가 한껏 검후를 기다리고 있는 아환의 시야에 잡혔다. 얼핏 보았지만 지난 번 보았을때와 별 차이가 없는 화려한 복색을 갖춘 검후! 아환은 전신을 가늘게 떨기 시작하였다. 이제 하나! 하나만 더 되면 자신이 연출한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야! 이 새끼야!" 거친 욕설과 함께 상명군의 신형이 나는 듯 아환에게 빠르게 다가왔다.
"이 새끼 너! 육시할 놈!"
나한출세의 초식으로 주먹이 빛살같이 직선으로 아환에게 접근하였다.

드디어 그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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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외로 한편을 더 올렸습니다. 내일 올릴까 하다가..
어찌 되었든 일부는 여기까지 입니다.
이제 2부로 넘어갑니다. 말씀드린대로 '습공(習功)'입니다.
2부 1장은 등(登) 이라고 정했는데..
외자로 한다고 해서 건방지다 생각지 마시길..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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