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경험담

[창작] 수라기(獸羅記) 제1부 적무환(赤無患) 4장 우(遇) (3)

작성자 정보

  • 작성자 슈어맨스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3)

아환이 그 사람을 만난 건 한달 쯤 전 어느 날이었다.

아환은 평소와 같이 나무를 한짐 한 후 산을 내려와 고을로 들어서서 미리 약정된 한 객점에 나무를 팔려고 하였다. 지게로 한 가득이었지만 그리 힘들지 않은 기색으로 등짐을 멘 상태에서 객잔 후분으로 들어가서 나무를 내려 놓고 나뭇값을 받으려고 후문을 나와 객점의 정문으로 발길을 향하던 중이었다.
막 정문을 들어설려고 하는 중 마침 정문에서 나오는 어떤 한 사람을 보았다.
20대후반? 30대 초반? 그 쯤 되었으리라.
아환의 기억속에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광경에서 보았던 인물, 한 여인이 문에 있는 주렴을 헤치고 문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고귀한 기품이 흘러 범인은 범접지 못할 느낌이 드는 청의의 비단 궁장의를 입은 화려한 복색을 한 여인, 삼단의 머릿결을 쪽지어 뒤로 틀어 올리고 하얗고 반듯한 이마에 가늘고 선명한 아미에 호수같이 깊고 그윽한 봉목, 오똑한 콧날에 붉은 입술..희디 흰 목덜미를 타고 내려오면 푸른 비단에 감싸있는 젖가슴이 가히 여인의 몸매를 간접적으로 보여주고..절세미색이라 할 수 있는 여인! 검후(劍后)였다.

검후!
한자루 검으로 사해를 평정한 오십여년전의 절대고수!
아환의 뇌리속에 각인되어 있는 진청청의 능욕의 현장에 출현한 여걸. 무림 칠왕의 으뜸이며 아환 스스로가 사부라 섬긴 비왕을 죽음으로 이르게한 검의 극(極)을 이룬 여종사.

바로 검후가 자신의 옆을 지나가는 것이었다.
검후를 만났던 현장 자체가 아환에게 있어서 결코 잊지 못할 순간이었기에 그 당시에 새겨진 검후의 모습은 결단코 지워질 수 없었다. 비록 그 당시의 무인의 모습이 아닌 화려한 궁장을 입고 조금 더 젊어진 듯한 자태를 하고 있다 할지라도..

아환은 그 자리에서 멈추어 움직일 줄 몰랐다. 검후의 모습을 봤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고 그 날의 광경이 다시금 되살아나 아환의 머릿속을 흔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문을 들어설려는 그 자세로 한참을 아환은 그 자리에 멈추어 서 있었다. 이미 검후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진지 오래였지만 아환은 그 자세를 풀지 않았다. 마치 석상처럼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검후의 잔영이 남아 있는 고을의 관도를 뚫어지게 노려볼 뿐이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 점소이가 객잔 밖으로 나와서 아환의 상념을 깨우기 전까지는..

아환은 점소이가 자신을 흔들기 전까지 기억의 혼재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점소이가 아환을 흔들어 그의 정신을 돌아오게 한 후에야 제 정신을 차리고 객점안으로 들어가 회계대에 앉아 있는 주인을 만나 땔감에 대한 품을 받아 나왔다.
나오는 길에 아까의 점소이를 찾아 갔다.
"아칠형. 요즘 어떠세요?"
아환이 자신에게 말을 건넨것이 놀랍다는 표정으로 점소이, 아칠은 아환을 쳐다 보았다. 평소에 항상 과묵하고 말수가 없어 말을 붙여도 간결한 대답만 하던 아환이었다. 그러한 아환이 자신에게 말을 먼저 걸다니..
"그럭저럭..그래 누나도 잘 계시지?"
"예.."그리곤 복잡한 표정..
짐작한 듯이 아환의 어깨를 툭툭치는 아칠,
"휴..어쩔 수 없지 않니?"
"예.."
"그건 그렇고 어쩐 일이야? 네가 내게 말을 다 걸고?"
"아! 다름이 아니고 아까 객잔을 나선 여인.."
"그 무서운 여자?"
아환의 말이 맺기전 무섭게 튀어 나오는 아칠의 말.
"아환 너 그 여자에게 관심이 있니?"
"아니요..단지.."
"야! 그 여자는 포기해라. 그 여자 정말 무서운 여자야. 무림의 여자라고."
"..."
"그 여자가 이 마을에 처음 모습을 보인게 한 반년 정도 된 것 같은데.."
아환의 대꾸도 없는데 술술 말이 흘러 나온다.
"처음에 그 여자가 상가진에 나타났을때 마을 사람들은 다 깜짝 놀랐어.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왔나 싶더라니깐. 하얀 백의를 입고 나타난 그 여인의 미색에 마을 사람들, 특히 남정네들은 다 넋을 잃고 바라 보고 여편네들도 질투와 부러움으로 그 여인을 쳐다보기만 하였지. 얼마나 고귀하고 아름다웠던지..그 여자는 항산에서 내려온 듯 해서 항산선녀라고 마을 사람들은 부르지."
점소이의 눈이 검후의 미색을 그리는 듯 몽롱해진다.
"그 여자는 마을에 내려와서 포목점에 들려서 수를 놓을 재료와 몇가지 옷가지, 그리고 장신구들을 사가지고 우리 객잔에 와서 차를 한잔 시켰지. 그 주문을 받은게 나였어. 그 아름다운 입에서 흘러나오는 그 영롱한 음성이란..정말 으휴~"
더이상 자신이 쓸수 있는 미사여구가 없는게 한인지 한숨을 내쉬었다.
"너 그 여자에게 관심이 있지. 이 쪼그만게.."
웃으며 아환을 흘기던 아칠이란 점소이, 계속 말을 잇는다.
"포기해라. 포기해. 그 여자가 얼마나 무서운지 넌 모를꺼야. 너 상명군알지? 그 상명군이 그 여자의 미모를 보고 달려 들었다가 아주 혼쭐이 났어. 우린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가까이 갔는가 싶더니 한 십장정도 날라가더라. 그 항산선녀가 손으로 가볍게 밀었는데 그 힘센 상명군이 십장이나 날아가다니..으휴..그 후에도 두어번 찝쩍대더니 지금은 아예 그 선녀가 오는 날이면 문밖으로 나오지도 않는다더라."

상명군이라면 지금 아환의 누나라고 알고 있는 여자와 아환의 집에서 한참 뒹굴고 있을 각다귀를 말함이었다. 무이관주인 상명선의 사촌동생으로 몇가지 무공을 익혔다고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는 불량배 노릇을 하고 있는 자였다. 사촌형인 상명선이 별 관여를 하지 않아 마치 이 상가진이 자신의 세상인양 활보하고 다니는 그저 그런 삼류인간이었다.

처음에 그 여자라고 하였다가 끝에가서는 선녀라고 창하는 것을 보면 검후에 대한 경외심이 대단함을 알 수 있었다. 말을 하는 도중 도중에 멍해지는 눈빛이나 자신이 알고 있는 온갖 수식어를 검후를 표현하는데 쓰는 것을 보니..

아환은 아칠로부터 검후가 이 마을에 주기적으로 나타나고 또 이 근처에 은거를 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보통 언제 쯤 와요?"
"관심 끊으래두. 매월 초닷새에 꼬박꼬박 나타나더라. 내가 그 선녀가 나타날때마다 기록을 꼼꼼히 해 놓았거든.."
진정 관심을 끊을 사람은 따로 있을지도..

잠시 무언가를 곰곰히 생각하던 아환,
"고마워요. 아칠형. 다음에 제가 술한잔 살께요."
"뭘..그리고 너 관심 끊어라."
뒤를 돌아가는 아환의 뒤에 아칠이 소리쳤다.

객점을 뒤로 하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아환의 머릿속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검후..검후라..검후가 이 근처에, 이 항산에 은거하고 있다..바로 이 항산에..'
'그리고 수를 놓는 재료? 장신구? 화려한 비단 궁장이라..'
아환의 머릿속에 남아있었던 검후의 모습은 그게 아니었다. 처음 구문현 근처의 야산에서 보았을때, 오륙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그 당시 검후의 모습은 전형적인 무사의 형태였다. 질끈 묶은 머리에 단정한 마의의 차림새, 거기다가 자신을 가꾼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어쩌면 중성의 느낌에 가까운 그런 차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변해도 너무 변했다. 거기다가 스쳐지나갔지만 분향이 옅게 풍겨나오는 화장이라..
무언가 어긋나는 듯한 상관관계.

아환이 그 대답을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집에 다 와서 마당에 들어와 자신의 누나라 불리우는 여자와 사내의 신음소리를 듣고서였다.
'현녀심결!'
'검후는 현녀심(玄女心)을 익혔구나.'
비왕이 고의로 분실한 현녀심결을 검후는 익혔구나! 내심 부르짖는 아환이었다.

현녀심결!
현녀란 중국 고대 한 나라의 황제에게 정력과 방중술을 강의한 소녀(素女), 채녀(采女), 현녀(玄女)란 세 선녀의 고사에서 나온 인물로서 여성에게 마음을 다스리는 묘용을 준다. 산만해지기 쉽거나 심마를 없애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지만 정도의 차이에 따라 여성스러움이 나타나기도 하는 심결로서 일반 무림에 잘 알려져 있지 않는 외술(外術)계 심결이다.

무공외엔 다른 지식이 별로 존재하지 않는 검후에게 있어 비왕이 떨어뜨린 심결을 그녀는 무심결에 익힌 것이 틀림없었다.

'현녀심결이라..현녀심결이라..그리고 황제의(皇帝意)..'
내심 깊은 생각을 하는 아환.

'사부님의 말씀을 알겠구나.'
아환은 크게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는 한창 열락의 괴성이 흘러나오는 방문을 무심한 시선으로 쳐다 보곤 부엌으로 향했다.


----------------------------------------------------------------------------------

많은 분들이 댓글을 남겨주시네요..감사합니다. 힘이 되요.
허접한 글이지만 좋게 평가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무술장면이 적은 것은 이 '허접'을 감히 무협이라 할 수 없기에..하지만 2부에서는 본격적인 무공관련장면이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2부가 습공(習功)이니 만큼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꾸벅~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31,893 / 52 페이지
번호
제목
이름

공지사항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