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16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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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슈어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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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으로 클로디아, 샤론 그리고 브리이언은 저녁 식사 후에 나와 함께 본 식당에서 로버트의 첫 번째 발표를 듣도록 한다. 모두 알겠나?"
세 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똑같이 "예, 크리스"라고 외쳤고, 한 명은 목 메인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크리스가 로버트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오늘 밤 이후론 자네 목소리가 좀 나아지기를 바라네."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크리스가 말했다.
"모두 해산하도록."
집안을 꾸리던 레이첼도 없고, 부지런한 그림자처럼 집 안팎을 넘나들던 임시 고용인들의 도움도 없던 그 첫날. 클로디아는 거의 머리가 뒤죽박죽이 된 것 같았다. 무슨 일을 어떤 순서로 해야하는지 적어놓은 메모를 끊임없이 뒤적이던 클로디아는 넋이 빠지고 겁에 질려 기절할 지경이었다. 이른 오후가 되자 크리스가 그녀를 불러내 대신 메모를 해주었는데, 이상스럽게도 호되게 나무라지는 않았다.
클로디아는 너무나 마음이 놓여 그 이유에 대해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알렉산드라와 함께 보냈던 그 놀라운 밤 이후, 그녀는 새로운 알의 번잡스러움을 거의 참을 수가 없었다.
브라이언은 자신이 정신 분열증 환자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침에 마구간 일을 했는데 잭은 늘 그렇듯 이해할 수 없는 발정 자체였으며, 점심시간 후엔 복숭아 빛 레이스가 달린 나비 넥타이로 성장을 한 자신을 발견했다. 이렇게 차려 입은 그가 청소를 하고 클로디아의 세심하고 미안한 듯한 지시에 따라 물건을 날랐다. 그녀는 그가 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전달하지 못하며 머뭇거렸고, 또 그 다음 일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서로 엇갈리거나 본의 아니게 또는 의도적으로 피하는 때가 많았다.
샤론은 몹시 산만해 있는 로버트와 또 다른 수업을 치렀고, 다음엔 부엌 바닥을 문지르고, 1층에 있는 방들을 청소하고, 다음엔 그렌델의 사무실에 가서 가득 쌓아 놓은 편지에 우표를 붙였다. 오후엔 지루해 죽을 지경이던 참에, 알렉산드라가 지켜보는 가운데 상당히 오랫동안 클로디아와 구강성교를 해야만 했다. 그런데 그 일을 중앙 복도가 내려다보이는 난간 바로 옆 2층 층계참 한가운데서 치렀기 때문에, 여느 때완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저 평범하고 무른 여자 애라고 여겼던 클로디아가 오늘따라 기꺼이 모든 걸 드러내 보이는 자세를 취했기 때문에 보통 대보다 훨씬 흥미로웠다. 하지만 그 후엔 저녁 셀러드 용 감자를 잘게 써는 일을 했다. 샤론이 비명을 지르지 않기 위해 할 수 있었던 일의 전부였다.
로버트는 알 수 없는 긴장감 속에 하루를 보낸 후에야 저녁식사를 조금도 할 수 없었다는 것과 크리스가 모두를 해산하도록 했을 때 자신이 나뭇잎처럼 떨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인 감독이 나머지 세 사람을 보내버리고 로버트에겐 곧장 본 식당으로 건너가 기다리라고 했던 것이다. 로버트는 무릎을 모은 채 커다란 방에 앉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암기한 시를 되뇌었다. 아, 그들 앞에서 왜 내가 그것을 해야만 할까? 왜 알렉산드라는 내게 시를 외우라고 시킨 것일까?
그렇지만 울면 안돼. 그러면 그들 중 하나가 내 대신 매를 맞을 것이고, 난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거야. 그들이 클로디아를 때리기로 한다면 어떡하지? 그냥 죽는 게 나을 거야. 침착해야만 해. 사내다워야 한다고. 위엄을 지켜야만 해. 정장 차림을 한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돼. 그들에게라면 충분히 전기 사과 썰기라도 팔 수 있을텐데...............그래. 난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크리스가 들어와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자 로버트가 벌떡 일어섰다. 그들은 함께 식당 의자에 앉았는데. 의자 세 개는 앞 중앙에, 두 개는 약간 옆으로 떨어져있었다. 크리스가 로버트에게 다소 일그러진 미소를 던지더니 다시 밖으로 나갔다. 그는 이내 알렉산드라, 그렌델과 함께 들어왔고 두 주인이 옆에 있는 의자 두 개를 차지했다. 알렉산드라가 말했다.
"로버트, 커튼이 없으니까 일단 돌아서 있어라. 그러나 모두 모였을 땐 돌아서서 관객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는 그녀가 말한 대로했고, 이윽고 동료들이 들어와 의자에 앉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노예들이 왜 바닥에 앉지 않는 걸까? 그리고 크리스 자리는 왜 없는 거지?
크리스의 목소리가 로버트의 궁금증들을 풀어주었다.
"지원자 여러분, 오늘 밤 로버트가 고전 시를 극적으로 낭독함으로써 우리를 즐겁게 해 줄 것입니다. 로버트, 이제 돌아서서 시작해도 좋습니다."
로버트가 깊이 숨을 들이켰다. 침착하자! 침착해! 알렉산드라가 말한 것처럼 조심스럽게, 아주 유연하고 우아하게 돌아서서 눈을 떴다. 그러나 그는 온힘을 다해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아야 했다. 그들의 복장이 너무 이상야릇했기 때문이다.
브라이언은 흰색 레이스가 달린 앞치마에 레이스 달린 모자를 쓰고 유두 사이에서 흔들거리고 있는 가느다란 진주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목에는 더 많은 진주가 매달려 있는 굵은 줄이 걸려 있었고, 빅토리아식 귀고리가 춤추며 흔들리고 있었다. 뺨에는 어릿광대 의상에서나 볼 수 있는 밝은 색 연지가 발라져 있었다.
클로다아가 자신에겐 너무 크고 야한 바둑판 무늬의 반바지와 구식 대님을 단 남자 양말을 신고 있었다. 반바지엔 멜빵이 달려 있었는데, 오른쪽엔 스마일 배지가 왼쪽엔 멕거번 캠페인 배지가 달려 있었으며, 머리는 땋아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샤론. 글쎄, 샤론은 최신의 록 비디오나 오래된 공상과학 소설이나 선정적인 싸구려 잡지 표지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의상을 걸치고 있었다. 가슴엔 흉악하게 생긴 고리 달린 원뿔형 장식이 뒤덮여 있었고, 발목부터 엉덩이까지는 멋들어진 금란(금은 실을 섞어 짠 천)으로 된 라이크라 레깅스(정강이 바지)를 입고 있었다. 발에는 푹신한 분홍색 토끼 슬리퍼를 신고 있었고, 귀 위에는 금으로 된 더듬이가 튀어나와 있었다.
로버트는 계속 웃음을 참고 있었다. 그는 브라이언이 웃음을 참고 있지만, 힘에 부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클로디아도 일종의 충격을 받고 있었다. 그녀는 로버트를 쳐다보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산만스러워 하고 있었으며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의 원인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 샤론은? 그녀은 화가 나 있는 것 같았다. 호전적인 얼굴 표정과 유두 같은 원뿔형 장식이 전혀 어울릴 수 없는 부조화를 이루며 어쩔 수 없는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입가가 씰룩거리는 것을 애써 참던 로버트는 알렉산드라를 힐끗 쳐다보고 나서 땀방울이 목뒤로 으르는 느낌이 들었다. 노예들의 이상한 옷차림이 전혀 우습지 안다는 듯한 알렉산드라가 그에게 시작하도록 손짓을 했고, 그렌델은 손으로 즐거워하는 입을 막고 있었다. 크리스는 그 두 사람 뒤에 서서 뒷짐을 진 채 완전히 무관심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로버트는 숨을 들이켜고 목을 가다듬으며 애써 사람들 머리 위로 시선을 고정 시켰다. 더듬거려서도 높은 어조로 말해서도 안돼. 인상적이고 분명한 소리를 내야만 한다.
그때 샤론의 더듬이가 그의 시야 속으로 뛰어 들어왔다.
배와 가슴속에서 폭소가 터져나오려고 했지만 근 애써 억눌렸다. 조심스럽고 차분한 목소리로 뒷짐을 지고 낭송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빛나고, 미끄러운..............."
그러나 기어이 웃음은 터지고야 말았다. 웃음은 본래 감염성이 있는 것이라 브라이언도 무릎을 때리며 큰소리로 웃었고, 클로디아도 눈물이 고이도록 킬킬거리고 말았다. 웃음소리는 그들이 서로를 쳐다볼 때마다 더욱 격렬해졌다. 샤론은 잠시 어리둥절해 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마침내 킬킬거리기 시작했다.
그 웃음소리는 브라이언의 가슴에서 출렁대는 진주를 보자 더욱 강렬해졌다. 네 명의 노예들은 눈물이 뺨으로 흘러내리고 숨이 차 오를 정도로 실컷 웃고있었다.
하지만 알렉산드라는 평정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연출한 쇼였던 것이다. 그렌델은 머리를 뒤로 젖히고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하고 있는 크리스에게 싱긋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제 됐어! 정신차려!"
하인 감독이 엄하게 말했다. 클로디아가 맨먼저 웃음을 멈추었다. 브라이언과 샤론은 시간이 다소 걸렸는데, 여전히 웃음을 참을 수 없다는 듯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로버트는 눈물을 닦고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알렉산드라를 쳐다봤다. 그녀가 다시 시작하라는 고갯짓을 했다.
바로 조금 전 질식할 것 같은 목소리로 내뱉았던 그 말들이 기도서의 유명한 구절처럼 로버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 순간의 유쾌함은 완벽한 음조가 되어 난 센스적인 시구처럼 매끈하게- 비록 극적인 운율은 아니었지만-굴러 나왔고, 로버트는 그렇게 쉽게 낭송했다는 것에 스스로 놀라워했다. 그렇게 쉽게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세 사람이 바로 앞에서 그런 우스꽝스런 의상을 하고 앉아 있었다는 것과, 그런 그들에게서 미묘한 격려를 느꼈다는 것이었다. 여전히 숨죽인 킬킬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긴 했지만, 모두들 끝날 때까지 어떤 형태로든 평정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교 부리기를 망설이며 그가 다소 머뭇머뭇 마지막 행을 끝마쳤다. 잠시 알렉산드라를 쳐다보고는 재빨리 눈을 내리깔았다.
"극적인 지도가 좀 필요하긴 하지만, 처음 한 것 치곤 아주 훌륭했어. 로버트, 날 따라와라."
그녀는 그렌델 모르게 살짝 윙크를 하곤 돌아서서 문 쪽으로 걸어갔다. 로버트가 재빨리 동료 노예들 옆을 지나쳐 따라갔다.
"좋아, 일어나서 옷을 벗고 의자들을 뒤로 갖다 놓거라."
크리스가 외쳤다.
"괜찮았어. 이제 자기 할 일로 돌아가야지!"
그렌델이 일어나 크리스의 어깨를 가볍게 건드렸다.
"오늘밤에 다른 애 한 명 보내드릴까요. 주인님?"
그 키 큰 남자가 막 낡은 할로윈 의상을 벗고 있는 세 명을 내려다보았다.
"아니, 됐네."
그들 각자에게 치욕스런 일침을 가하며 그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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