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경험담

환상유랑기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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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슈어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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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이상






위이잉.
딛고 있는 발판, 바람의 계단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고 멈춰섰을 때 케넌 마틴은 자신의 앞에 펼쳐져있는 하얀 색의 복도와 그 복도의 끝에 위치한 하얀 색의 문을 볼 수 있었다.

"으음."

순백의 색깔들이 너무도 이질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해서 케넌은 잠깐 눈을 감았다. 그 복도가 어느 정도의 길이인지, 그 방이 어느 정도의 크기인지 한 순간 느낌이 헷갈렸던 것이다.

'하얀 색이 원래 그런 색이던가?'

마법학의 서적들을 읽을 때 하얀 색 관련의 책을 읽은 적이 있는지를 머리 속으로 떠올리면서 케넌은 안고 있던 서류들을 더욱 꽉 끌어안고 복도에 걸음을 내딛었다. 순간 붉은 색의 빛이 번쩍이더니 무감정한 여자의 목소리가 복도에 울리기 시작했다.

"방금 전의 검색결과 당신은 1종 관리자가 아닙니다. 1종 관리자가 아닌 경우 이 층에 허락없이 들어설 수 없으므로 지금이라도 늦지않았으니 탑의 마스터께 허락을 구하거나 돌아가도록 하십시요."

검색?
그 여자의 말에 나왔던 단어에 케넌은 한 순간 의문을 품었지만 곧 깨달았다. 방금 전 복도에 가득했던 붉은 색이 검색 장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탑의 탑주이며 그의 스승이자 마스터이신 하인리히 하이네님과 마찬가지 지위인 1종 관리자들이라면 몸의 어딘가에 녹색 삼각형 표식을 가지고 있을 테고, 그 빛이 그 표식을 감지했다면 복도는 통과를 허락했을 것이다. 그러나 빛이 감지한 것은 그의 손목에 있는 녹색 삼각형 두 개였을 테니 통과를 허락하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2종 관리자의 증거인 왼쪽 손목의 표식을 오른 손으로 살짝 쓰다듬고 케넌은 이런 경우에 자신이 해야할 일을 했다.

"제 2종 관리자 케넌 마틴. 마스터 하이네님의 허가를 받고 빛의 탑 최상층에 들어갑니다."

케넌이 그렇게 말한 후 다시 발을 내딛자 복도는 순간적이지만 붉은 색의 빛으로 가득찼다. 그리고 다음 순간 여자의 목소리가 그의 통과를 허락해주었다.

"인정합니다, 제 2종 관리자 케넌 마틴. 당신이 이 층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합니다."

케넌 마틴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 목소리를 내는 것도 마도기에 몇 가지 형식을 입력해서 어떤 겨우에는 어떤 목소리가 나오도록 지시해둔 것일터였다. 그런만큼 마도기가 오작동하지 않을까 불안해할 수 밖에 없었다.
케넌은 조금이라도 빨리 복도를 통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뛰지는 않았지만 재빨리 걸음을 옮겨서 복도끝의 문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전혀 마법사답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쓰게 웃었다. 만약 마법사라면 이런 복도쯤은 가벼운 마음으로 스쳐지나가야 하지 않을까? 마법사가 마법을 믿지 못한다면 도대체 무엇을 믿을 수 있는 것인가.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케넌이 문을 열려고 문에 손을 가져대자 손목의 표식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문이 그대로 열렸다.

"아, 왔냐?"

하얀 색만이 가득해서 벽인지 아니면 하얀색의 공간에 들어온 것인지 착가하게 만드는 그런 공간에 여러가지 기묘한 물건들이 놓여져있었고, 그런 물건들 사이에 놓여져있는 책상과 그 책상앞의 의자에 앉아서 서류더미 사이에 파묻혀있는 한 중년의 남자가 케넌을 보면서 반갑게 웃어보였다. 그 남자가 바로 케넌의 스승이며 빛의 탑의 마스터인 하인리히 하이네였다.

"하이네님, 방금 전의 문은 어떻게 된 것이죠?"

케넌은 방금 전의 문이 표식에 반응한 것에 놀라서 하인리히에게 물었다. 그러자 하인리히는 입가에 살짝 미소를 떠올린 채 대답해주었다.

"별 것 아니다. 이 방은 원래 아무나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방인만큼 그냥 미는 것 정도로는 열리지 않게 되었지. 그래서 이번 한 번에 한해서 네 표식에 반응해서 열리도록 미리 마도기에 입력해둔 것이다."

케넌은 감탄하면서 문을 바라보았다. 일반적인 철문으로...... 아니 철이 아닌 다른 재료로 만들어졌을지는 모르지만 그리 대단한 문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방금 전처럼 사람의 몸에 있는 표식을 감지해서 자동으로 열리고 닫힌다면 그것은 정말 엄청난 문이 틀림없었다.

"대단하네요. 하지만 마정석같은 것을 계속해서 집어넣어줘야 하면 불편하지 않을까요?"

마도기를 작동시키려면 마정석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그렇게 말하던 케넌은 얼굴을 붉혔다. 마정석이란 것은 마나를 보석안에 모아놓은 것을 일컫는 말이었고, 이 빛의 탑이나 마도에 있는 마탑의 경우는 탑자체가 마나를 끌어모으는 역할을 해서 영지안의 모든 마도기들에 마나를 공급하는게 일반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잠깐이지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아니, 사과할 필요가 없다. 너는 방금까지도 영역 밖을 이동하느라 마정석을 사용하는 마도기를 썼었을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것보다 갔던 일은 어떻게 되었나?"

마스터가 그렇게 말했지만 케넌은 소리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감각의 차이가 나중에 어느 정도로 큰 실수가 될지는 뻔한 일이었다. 만약 그가 마스터의 적이었고, 마스터가 사용하는 마도기 역시도 마정석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때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의 작전은 엄청난 큰 차이를 가져올 것이었고, 그 결과도 엄청나게 달라질 것이었다. 물론 어느 쪽이든 결과적으로는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무한이 마나가 공급되는 마도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때에는 도망만을 생각할 수 있을테니 눈꼽만큼이나마 다른 경우보다 살아날 가능성이 있는 셈이었다.

"갔던 일들은 잘되었습니다. 몇 가지 걸리적거리는 일들이 있기는 했지만 마도기를 사용하니 간단학 해결되더군요."

케넌은 마도제국에서 마도제국의 외부의 간세들을 찾는 '탐색자'들과의 싸움을 떠올리면서 대답했다. 탐색자들은 강했다. 분명 개개인이라면 전부 그를 능가할만한 힘을 지니고 있을 지도 몰랐다. 그러나 마도기의 상대는 되지 않았다.

"마도기를 사용한건가....... 흔적은 남기지 않았겠지."
"네. 적어도 우리측에서 벌인 일이라는 사실을 알아낼 정도의 흔적은 남기지 않았습니다."

케넌은 자신있게 대답했다. 그가 손을 써둔 것이 있으므로 무슨 일이 있어도 빛의 탑에서 손을 써왔다는 것을 알아낼 수는 없을 것이었다. 물론 심증(心證)은 있겠지만, 심증만이라면 빛의 탑말고 다른 곳에도 갈테니 문제없었다.
하인리히는 그를 한 동안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네가 손을 썼다면 믿기로 하지. 하지만 가능하면 주의를 해둬라. 마도제국에 손을 대는 것은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난 뒤일테니까 그 전까지는 이쪽에서 흔적을 잡히면 좋지 않다."
"이게 그 서류들입니다."

케넌은 들고 있던 서류들을 하인리히의 책상위에 내려놓았다. 그 서류들이 그가 이번에 마도제국에서 복사해낸 기밀 서류들이었다. 서류들을 내려놓고 케넌은 이번에 마도제국에 감으로서 품게 된 의문을 자신의 마스터에게 물었다.

"어째서 마도제국을 공략하지 않는 것입니까?"
"응?"

하인리히는 서류들에 손을 가져가다가 손을 멈춘 채 그를 올려다보면서 반문했다. 케넌은 자신이 2종 관리자에 불과한 자신이 너무 많은 것을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서 긴장되지 않는 것이 아니었지만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다.

"지금 저희라면 충분히 마도제국을 손에 넣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지금 완성단계인 전이탑을 이용하면 마도제국까지의 전이도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마도제국의 젊은 마법사들은 모두 백작님을 동경하고 있고, 빛의 탑에 소속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마도 제국을 손에 넣는 것도 그다지 어려울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케넌은 하인리히가 그를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말을 도중에 멈췄다.

"네 말뜻은 알겠다. 네가 마도제국을 얕보고 있다는 것까지도. 하지만 그런 것들은 다 넘어간다고 치고 궁금한 것이 하나 있는데 대답해줄 수 있겠냐? 도대체 마도제국을 손에 넣어서 무엇을 하겠다는 거지?"
"네?"

케넌은 대답할 말이 막막해서 생각에 잠겼다. 마도제국을 손에 넣어서 무엇을 하겠냐니........... 가능하면 영토를 더 넓히는 것이 기본적인 생각이 아니던가?

"우리를, 아니 마스터를 무턱대고 영토만 넓혀가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아닙니다!"
"그렇다면 마도제국을 이유없이 손에 넣어야 할 이유가 뭐냐? 젊은 마법사들 때문에? 네가 잊은 것 같은데 마도제국에 있는 유능한 젊은 마법사들은 우리들이 손을 쓰지 않아도 알아서 우리쪽으로 넘어온다. 그 때문에 마도제국이 우리를 적대시한다는 것을 잊은 거냐?"

무엇때문에 마도제국을 원하는 거냐는 질문에 케넌은 대답할 말이 없자 입술을 깨물었다. 스스로가 어리석게 느껴졌다. 단순히 영토 싸움을 하는 듯한 발언을 하다니........ 이런 상황이라면 마스터가 그를 얼마나 하찮게 보겠는가.

"후-. 우리가 슐츠를 손에 넣고, 웨버 공작을 적대시하며 바데아 왕국을 손에 넣으려고 하자 네가 착각한 것 같은데 우리는 단순히 싸움을 해서 영토를 넓힐 그런 생각은 전혀 없다. 실제로 싸움을 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바데아 왕국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이유따위야 몇 개월안에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러지 않는 이유를 아냐?"
"아뇨."

케넌은 솔직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웨버 공작의 주위에는 이미 백작의 사람이 있었다. 원래 2종 관리자인 그까지 알 수 있는 정보는 아니지만 그가 마스터인 하인리히의 이야기를 엿들은 결과 웨버 공작의 딸과 손녀가 이미 백작님의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웨버 공작을 죽이는 것은 너무도 쉬울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어째서 손을 쓰지 않는지 그는 평소에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은 우리가 바데아 왕국을 전부 손에 넣은 다음에 왕국 전체를 다스릴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정복할 능력이 없어서 미적거리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정복한 후 지금의 귀족놈들과 똑같은 짓을 해댄다면 굳이 그 땅을 손에 넣어야 할 이유가 뭐가 있겠느냐. 지금만으로도 돈은 충분하고, 권력 역시 충분하다. 영지 안에는 우리 때문에 행복해하는 영지민들이 가득하다. 그런데 왜 굳이 전쟁이라는 수단을 써가면서 영지를 넓히려고 하는 것이냐? 그것은 마법의 혜택을 모든 이들이 맛보게 하기 위해서다."

마스터가 타이르듯이 하는 말에 케넌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는 그런 것은 생각치 않고 있었다. 단순히 물욕만이 앞섰던 것이다. 누구 다 그렇듯이 지금의 영지만으로는 부족해서 다른 영지를 차지하려고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게 아니었다. 그의 마스터는, 그리고 모두의 위에 있는 대마도사 하이베르크 백작님은 그런 것을 넘어서까지 내다보고 생각해서 움직이고 계신 것이었다. 사소한 물욕에 움직인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워서 케넌은 견딜 수 없었다. 존경하던 마스터의 앞에서 추악한 모습을 내보인 것 같아서 당장이라도 눈물이 흘러나올 것 같았다.
그런 케넌의 심정을 눈치챘는지 하인리히는 다정하게 미소지었다. 그런 마스터의 모습은 드물게 보는 것이기에 케넌은 놀란 눈으로 하인리히를 바라보았다.

"나 역시 젊었을 적에는, 아직 마스터를 뵙기 전에는 이상만을 품었을 뿐이었다. 꿈을 꾸었지만 실천으로 옮긴만한 능력이 없어서 방황하고 있었지. 하지만 지금 마스터는 내 앞에서 나를 이끌어주고 있다. 그 강력한 힘으로. 그 강력한 마법에 의해서 나는 꿈꾸고 있던 이상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 너도 이제부터는 한번쯤은 생각해두거라. 네가 하고 싶은 일을. 단순히 내가 시켜서 마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면, 너 자신이 진짜 마법사가 되고 싶다면 네가 마법을 배워서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 한 번 쯤은 생각해두거라."
"네!"

케넌은 힘을 담아서 외쳤다. 이제부터는 생각해보리라. 무엇을 위해서 마법을 배워야 하는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어서 마법을 배우고 싶은 것인지 생각해보리라. 케넌은 입술을 깨물며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그럼, 이제 물러가거라."
"네!"


*******



하인리히는 자신의 제자가 물러가고 비어있는 공간을 바라보았다. 문이 닫힘과 동시에 그가 있는 빛의 방은 외부의 공간과는 단절된 듯이 하얀 색만으로 가득차있었다.

"접속재개."

그가 나직하게 명령을 내린 순간 방은 케넌이 들어오기 전의 상태로, 즉시 사방의 시종마들이 보고 있는 영상이 비치는 상태로 전환되었다. 각각의 장소에 창문같은 곳이 생기면서 시종마들이 그 두 눈으로 보고 있는 영상이 비춰졌다.

"이상이라......"

하인리히는 쓰게 웃었다. 말은 그럴싸하게 했지만 실제로 그 역시도 마스터를 만나기 전까지는 제대로 된 이상을 갖지 못했었다는 것이 생각난 것이다. 이상이든 뭐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결국 힘이 필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힘이 없으면 이상이든 뭐든 이룰 수 없었다.
영상들을 바라보던 그는 케넌이 오기 전에 보고 있던 서류를 다시 한 번 들여다보았다. 이번에 마도의 각지에 있는 학교와 슐츠에 만들어놓은 학교에서 마법쪽의 희망자가 대폭 늘었다는 보고서였다.

'과연.'

하인리히는 다시 한 번 자신이 마스터로 모시고 있는 남자에게 감탄했다. 그 남자는 단지 그가 이상으로 꿈꾸고 있었지만 명확한 모습을 갖지는 못했던 마법에 의한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바데아 왕국의 수도에서 벌어졌던 검투대회를 하인리히 경기장에서 마도기를 이용해서 비추게 하더니 그 후 4개월 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5개월 전에 마법사들을 대거 동원해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든 후 그것을 방영했다.
처음에 하인리히는 굉장히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을 하기 위해서 낭비된 시간이었다면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아찔할 정도였다.
그 이야기는 고작해야 단순한 영웅물 이야기였다. 한 마법사가 영지민을 괴롭히는 기사 영주를 처단한다는 것이 주된 줄거리인 내용이었지만 실제로는 정말 황당하게도 주인공인 마법사는 어마어마한 마법들을 마구 난무하는, 대마도사급의 마법사였으며 적인 영주는 소드 마스터급의 기사였다.
물론 모든 것은 마도기를 이용해서 효과를 냈지만 전투같은 것은 격렬하게 벌어졌고, 주인공인 마법사는 일부로 얼굴이 잘 생겼으며 연극에도 솜씨가 있는 연기자를 뽑아서 했고, 마을의 처녀이며 영주가 눈독을 들였고 강제로 손에 넣으려고 했던 여자 주인공 역은 굉장한 미녀를 일부로 돈을 주고 고용해가면서 찍었었다. 즉, 현실로는 있을 수 없는 단순한 영웅물의 이야기를 만든 것이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하인리히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고작 이런 일을 하려고...... 라면서 그것을 찍는 동안 얼마나 화를 냈는지 생각도 나지 않았다. 1종 관리자와 2종 관리자, 3종 관리자등, 마법을 할 줄 아는 이라면 대부분이 동원되었고, 그외도 어마어마한 인적 자원이 동원되어야 했었다. 또한 결국에는 전투 장면을 찍느냐고 부셔진 성과 마을을 만드는데 들어간 돈만 해도 상당했다. 도대체 그런 것을 왜만드는지 그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 결과가 그의 손에 들려있는 것이다.

"이것을 노린 것인가."

하인리히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영상은 지난 몇 개월간 몇 번씩이나 반복해서 상영될 정도로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그 영상물에 등장했던 마법사의 인기는 엄청났고, 그 영상 덕분에 마법사가 되고 싶다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하인리히는 과거 마스터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거짓을 보여주더라도 마법사에 대한 환상을 품게 만들어야 한다고. 사람들이 기사가 아닌 마법사를 동경해야 한다고.

"과연."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쓰잘데기 없는 것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 것인지를.

"어서 다른 지역에서도 싼 가격에 구경올 수 있도록 해야할텐데."

그렇게 한다면 일반인들에게 지금까지 퍼져있던 마법사에 대한 나쁜 생각들이 전부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 사라질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런 환경 속에서 더 많은, 더 뛰어난 마법사가 탄생하는 법이었다.
하나 그 방법을 생각하던 하인리히는 눈쌀을 찌푸렸다. 여러가지로 복잡한 문제들이 걸리적 거렸던 것이다. 우선 여러 지역에서 사람들을 모으는 것보다는 한 지역에서 많은 사람을 모으는 것이 돈이 더 적게 먹혀들어갔다. 한 지역에서 많은 사람을 불러모으려면 반드시 그 지역의 영주와 대화를 나누지 않으면 곤란했다.
바데아 왕국 코텐루겐 령의 영주들은 문제없겠지만 역시 바데아 령의 영주들과의 문제는 여러 가지 문제가 뒤따랐다. 물론 그들 중에서도 이미 스스로가 원하는 것을 가져가고 충성을 맹세한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더라도 벌써부터 웨버 공작에게 등을 돌렸다는 것을 드러낼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따진다면 여러가지 곤란한 점이 많았다.
분명 크기 자체만으로는 코텐루겐 령이 바데아 령과 맞먹을 정도로 컸지만 전투가 벌어져서 수 많은 사람이 죽어갔던 코텐루겐 령의 인구수가 바데아 령보다 떨어지는 것이 확실한 만큼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았다.

"당장이라도 동력탑을 관리할 사람들만 있었다면 점령해버릴텐데."

하인리히는 안타까움을 참지 못하고 혀를 찼다. 점령을 하고 그 지역의 마도기들에 마나가 제대로 공급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마나를 공급해주는 동력탑이 완성되어야만 했다. 마탑이나 빛의 탑과 같은.
그리고 그런 동력탑들은 제각각 무서운 위력을 발휘하는 것 역시도 가능했다. 그런만큼 그런 동력탑을 책임지는 자는 믿을 수 있고, 실력이 있는 자여야만 했다. 지금 아직도 바데아 왕국 전역을 지배하지 않는 이유는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동력탑의 마땅한 책임자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그들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마도기와 그들의 마스터인 시현 김 하이베르크 백작이 없으면 형편없었다. 그것 중 그들의 힘이나 다름없는 마도기를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마나를 공급해주는 동력탑이 건재해야만 했다. 마정석을 쓰면 마도기를 작동시킬 수 있었지만 마정석은 최후의 순간을 위해서 아껴둬야만 했다. 그렇기에 현재 그들로서는 앞으로 나서서 싸울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얼마 남지 않았다."

하인리히는 눈을 감고 의자에 등을 파묻었다. 그가 케넌에게 시켜서 마도제국에서 서류를 복사해오게 한 이유는 마도기를 제대로 써볼 기회를 주기위해서였지 실제로 그 서류가 필요해서가 아니었다. 진정 서류가 필요했다면 시종마를 통해서 보고, 그 영상을 저장해두는 것으로도 충분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현재 케넌과 마찬가지로 아직 젋고 재능이 뛰어나며 충성심이 강한 마법사들이 키워지고 있었다. 이제 3년, 아니 2년 정도만 있더라도 그들을 실전에 투입하기에 충분했다. 2년 정도 후, 그들을 실전에 투입할 수 있게 되었을 때쯤이면 바데아 왕국 전체를 손에 넣어도 문제가 없을 것이었다. 그 때쯤이면 마정석도 산더미처럼 쌓아놓을 수 있어서 아낌없이 쓸 수 있을테고 바데아 전체에 마나를 공급할 수 있을 정도의 동력탑을 세우고, 그 동력탑의 탑주들로 임명할만한 이들도 생겨날 것이었다.
하인리히는 그 때를 생각하면서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의 꿈이, 마스터를 만나기 전에는 흐릿하기만 했던 꿈이 지금 그의 눈 앞에 선명하게 펼쳐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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