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뉴스

성 착취물 수천건 보유해도… 98%는 “초범이라 집행유예” [뉴스 인사이드-디지털성범죄 솜방망이 처벌 여전]

작성자 정보

  • 작성자 슈어맨스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본보 ‘텔레그램·성 착취’ 판결 분석
상반기 1심 재판 62건 중 실형 없어
60건 집행유예, 2건은 더 낮은 처벌
형사처벌 전력만 없으면 ‘초범’ 규정
대법원 ‘n번방’ 이후 새 양형기준 시행
“단 한 번도 범행 없어야” 초범으로 인정
여전히 일선 법원선 감경 사유로 적용
‘반복적 범죄’에는 가중처벌 흔치 않아
전문가 “사법부 기계적 초범 감경 경향”
양형기준 강제성 없어 처벌강화 걸림돌


16653729823838.jpg
A씨는 2019년 11월 텔레그램의 한 대화방에 참여했다.
그 대화방에서는 수천 개의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이 공유됐다.
A씨도 이곳에서 11개월 동안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7146건을 다운로드했다.
이외에도 불법 촬영물 1741개를 다운받았고, A씨가 유포한 음란물도 59건에 달했다.

A씨는 이듬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법정에 섰다.
재판부는 A씨에게 “피고인은 약 1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과 불법 촬영물을 소지했고, 소지 개수도 다수”라며 “피해 아동·청소년에게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가하게 되므로 사회적 폐해가 무척 크다”고 지적했다.
다만 “피고인은 이 사건 범행 이전에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다”면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2020년 n번방 사건이 알려지면서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범죄 양형을 강화하기 위한 기준이 마련됐지만, 여전히 솜방망이 처벌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세계일보가 인터넷판결열람시스템에 ‘텔레그램’과 ‘성 착취’를 키워드 검색해 올 상반기 나온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관련 1심 재판 62건(무죄 1건 제외)을 분석한 결과, 실형을 선고한 판결은 단 한 건도 없었다.
62건 중 60건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고, 나머지 2건은 각각 선고유예와 벌금형으로 집행유예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상반기 성 착취 실형 0건…초범 감경 98%

실형을 피한 디지털 성범죄자들에게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감경 사유는 ‘초범’이었다.
판결문 62건 중 60건이 초범이라는 이유로 감경을 받았다.
나머지 2건 중 1건은 실제 범죄 전력이 있는 경우였다.
초범이 감경 사유로 적용되지 않은 판결은 61건 중 1건뿐이었다.
98%가 초범이라서 감경받았다.

전문가들은 법원이 여전히 초범의 의미를 너무 폭넓게 적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초범은 통상 ‘동종 범죄로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에 따라 성 착취물을 수천 개 유포했더라도 처벌 전력이 없으면 초범으로 분류, 감경을 받곤 했다.
1665372983482.jpg
다만 n번방 사건으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재고되면서 대법원은 지난해 1월부터 ‘형사처벌 전력 없음’의 의미를 ‘피고인이 해당 범행 전까지 단 한 번도 범행을 저지르지 아니한 경우’로 정의하고, ‘불특정 또는 다수의 피해자를 대상으로 하거나 상당한 기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범행한 경우는 제외한다’는 단서를 붙인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을 시행하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에서 초범은 일반양형인자의 감경요소에 해당하는데, 반복적 범행은 일반양형인자보다 양형에 더 결정적 역할을 하는 특별양형인자의 가중요소로 뒀다.
당시 대법원은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상 암수 범죄가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점 등을 고려해 반복적으로 범행한 경우는 감경요소로 고려해서는 안 된다는 제한 규정을 신설했다”고 설명했다.

◆성 착취물 7000여개 다운받아도 ‘초범’

하지만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난 올해도 초범은 감경사유로 흔히 등장하는 데 반해 반복 범행은 가중 사유로 쉽게 적용되지 않고 있다.

성 착취물 7000여개를 다운받은 A씨 사례만 봐도 재판부는 “이 사건 범행 이전에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다”는 점을 참작했다.
반면 반복 범행에 대해서는 “피고인은 약 1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과 불법 촬영물을 소지했고, 소지 개수도 다수”라면서도 특별양형인자는 ‘없음’이라고 적었다.
16653729843844.jpg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다른 판결문들에서도 성착취물을 수백∼수천개 소지 혹은 유포했더라도 형사처벌 전력이 없다며 감경해준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피고인이 소지한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과 불법촬영물의 수에 비추어 그 죄질이 좋지 않다”거나 “범행의 경위 및 수법, 기간, 횟수 등에 비추어 죄질과 범정이 나쁘다”면서도 특별양형인자는 없다고 적시했다.
이 경우 범죄전력이 없는 초범이라는 점은 피고인에 유리한 정상으로 적용됐다.

전문가들은 기계적으로 사용돼온 ‘초범 감경’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범죄 전문 변호사인 이은의 변호사는 “범죄를 반복적으로 저질러 온 사람과 범죄가 처음인 사람의 양형 조건이 같을 수는 없으니 초범이 피고인에 유리한 사정인 것은 맞다”면서도 “해당 규정이 신설된 건 초범이더라도 범죄 수준에 따라 무겁게 처벌하겠다는 의미인데, 여전히 처벌 수준이 미미하다는 점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한국여성변호사회의 서혜진 변호사는 “사실 양형기준은 권고의 효력만 있다”며 “대부분의 판사가 양형기준을 따르는 편이긴 하지만,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은 시행된 지 오래되지 않아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고 말했다.
조희연 기자 choh@segye.com



<본 콘텐츠의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세계일보(www.segye.com)에 있으며, 뽐뿌는 제휴를 통해 제공하고 있습니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8,438 / 317 페이지
번호
제목/내용

공지사항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