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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협이 부르면 무조건 가야”…해묵은 국위선양 이념, 韓 축구계 또다른 암초 [김동환의 김기자와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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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대표팀 감독 사태 들여다보니
홍, 리그 도중 울산 사령탑 하차 파문
“감독에 선임되면 해당 구단은 응해야”
‘대표팀 절대 우위’ 독소 조항 드러나
“현실 반영해 운영 규정 고쳐야” 비판
연간 300억대 보조금 지원 받는 축협
“정보공개 등 공기관 기준 적용” 지적도


대한축구협회(KFA·축협)의 홍명보 축구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풍파가 거세다.
2002 한·일 월드컵 스타 이영표는 ‘축구인은 행정을 하지 말아야 한다’며 날을 세웠고 박지성은 ‘체계가 무너졌다’고 축협을 겨냥했다.
정치권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전진숙 의원은 감독 선임 권한이 있는 축협 전력강화위원회의 회의록 공개를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며 거세게 비판했고, 같은 당 전용기 의원은 축협 상위 기관인 대한체육회 차원의 감독 선임 절차 조사를 촉구했다.
이번 논란의 중심에는 대표팀 절대 우위로 해석되는 ‘축구국가대표팀 운영규정’ 제12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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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내정된 당시 울산HD 홍명보 감독이 관중석을 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열세 번 개정하고도 ‘부르면 응하라’

이 조항은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회 또는 기술발전위원회 추천으로 대표팀 감독·코치·트레이너 등에 선임된 자가 구단에 속했을 때, 해당 구단에 이를 통보하고 소속 구단의 장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응해야 한다’고 밝힌다.
프로축구 시즌 중에도 대표팀 감독으로 불려 가면 무조건 응하라는 얘기다.

5개월여 공석인 대표팀 감독으로 울산HD를 이끌며 K리그 우승을 다투고 있는 홍 감독을 데려가고, 해당 규정 탓에 구단은 아무것도 못 하니 팬들만 뿔났다.
‘우리 얘기가 될 수 있다’며 다른 프로축구단 팬들까지도 날을 세운다.

1992년부터 2021년까지 열세 번이나 고쳐쓰기를 반복한 국가대표팀 운영규정을 살펴보니, 개정 연도는 나열했지만 제정 연도는 눈에 띄지 않았다.
1983년 태릉선수촌 이탈 축구대표팀 선수 징계를 다룬 과거 기사의 ‘80년 7월 제정한 대표팀 운영규정에 따른다’는 말로 시기를 추정할 뿐이다.

취재 과정에서 규정 제·개정 내역을 백방으로 찾았지만 확보할 수 없었다.
축협 공식 홈페이지는 2021년 5월 개정판만 게재됐다.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의 우리나라 모든 법안 제·개정 내역 공개와 다르다.
축협은 공공기관이 아니어서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 규정하는 청구 대상에도 해당하지 않아 과거 규정 정보공개청구는 시도조차 못 했다.
축협 관계자는 최근 통화에서 규정 개정판만 볼 수 있다는 취지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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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축구협회의 ‘축구국가대표팀 운영규정’ 제12조. 국가대표 지도자 선발기준에 따라 프로구단 등에 속한 인물이 감독으로 선임되면, 해당 구단이 따라야 한다는 내용(빨간 네모)이어서 전문가들의 ‘독소조항’ 지적을 받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KFA의 ‘투명 행정’ 요구하는 정치권

축협을 향한 정치권의 투명한 행정 요구는 단체가 매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조성하는 국민체육진흥기금 일부를 보조금으로 받는 것과 무관치 않다.
국민체육진흥법이 규정하는 바에 따라 조성된 기금을 살림에 보태므로, 공공기관에 준하는 기준을 축협에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축구팬 사이에서 나온다.

축협의 지난해 세입은 국민체육진흥기금 340억2430만1335원과 자체 수입 등을 포함해 총 1206억751만5517원이다.
2022년 세입(총 1255억7011만8325원)에는 국민체육진흥기금 322억4094만9359원이 포함됐다.
자체 수입은 기부금과 각종 사업 수익 등을 말한다.
전체 세입에 대한 자체 수입 비율로 계산한 축협의 재정자립도는 70%를 조금 넘는다.

특히 축협의 기관 성격 문제 제기는 대한체육회가 ‘기타 공공기관’이라는 점과 맞닿는다.
정부의 투자·출자·재정 지원 등으로 설립 운영하는 공공기관은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 공공기관으로 구분한다.
자체 수입 비율이 50% 이상이면 공기업이고 50% 미만이면 준정부기관이다.
기타 공공기관은 이 같은 수입 기준을 적용하기에 적절하지 않거나 자율성을 보장해줘야 할 공공의 목적이 있다고 판단될 때 정부가 지정한다.

공기업·준정부기관을 제외한 기타 공공기관에 대한체육회가 해당하므로 축협도 비슷한 시선에서 봐야 한다는 게 축구팬들의 지적이다.
공공기관이 되면 정보공개청구가 가능해져 협회에 관한 궁금증도 수월하게 해소할 수 있다고 이들은 말한다.

◆‘국가주의’ 없애고 ‘축구 생태계’ 반영해야

전문가들은 독소조항으로 지적되는 제12조의 개정을 내세웠다.
K리그에서 훌륭한 선수와 감독을 배출하는 쪽으로 바뀐 축구계 생태계를 현실에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최동호 스포츠평론가는 ‘국위선양’이라는 스포츠 이데올로기로 정당화됐던 국가주의 발상이 논란의 규정을 탄생시켰다고 분석했다.
이어 ‘프로구단 소속일 경우 해당 구단과 협의한다거나 승낙을 구한다’는 식의 조건이 들어가야 한다며, 대표팀과 프로구단의 협조 명문화 필요성도 강조했다.
축구계의 한 관계자도 “제12조를 고쳐 같은 논란의 재발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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