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가거나 피했을 때보다는 정면승부를 할 때 가장 좋은 해결 방안이 나왔습니다. 위기 상황에 놓였을 때는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 ‘아무도 나를 잡아먹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요."
국회사무처 최초 여성 차관급 공무원으로 임명된 진선희 입법차장은 28년간 국회에서 일한 베테랑이다. 국회사무처는 국회의장 직속 기구로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을 지원하고, 필요한 행정 업무를 수행한다. 진 차장의 현역으로서 마지막 커리어는 21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수석전문위원으로 연금개혁 공론화 지원 단장도 겸직했다. 국회 공무원은 이처럼 상임위원회에 소속돼 법안을 심의하고 위원회 진행을 지원하는 역할도 한다.
최근 국회 본관 입법차장실에서 만난 진 차장은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손에 쥔 연필을 놓지 않았다. 진 차장의 직업병이 메모하는 습관이어서일까. 그는 "국회에서 처음 일하면서 법률 시행을 위해 규정해야 하는 부칙을 명확하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간단치 않아서 잠이 들기 직전까지 고민을 했었다"면서 "그러다 좋은 방안이 떠오르면 일어나서 종이에 적어두고 다시 잠을 청했었는데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상임위원회를 두루 거쳐온 진 차장은 ‘경험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국회 업무는 특성상 많은 노력을 기울여 해결했음에도 잘 알려지지 않거나 당장의 가시적인 결과로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는 "어려운 일을 처리해 본 경험이 있으면 이는 곧 자신만의 자산이 된다"면서 "그런 사람은 직책을 맡게 됐을 때 훈련이 덜 된 사람보다 두려움 없이 일을 잘 수행하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고 했다.
-법대를 졸업했는데, 법관이 아닌 국회에서 일하고 싶었던 이유는.
△적성에 대한 고려와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공익에 기여하고 싶다는 원론적인 마음과 함께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많아서 사회현상의 인과관계가 궁금했다. 그러다 보니 법학, 경제학, 행정학, 정치학 등이 수험과목인 입법고시 또는 행정고시가 더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했었다. 현실적인 이유로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편이었는데, 졸업하던 즈음에 아버지가 퇴직을 앞두셨기 때문에 수험 기간이 조금이라도 짧은 시험을 준비해서 빨리 붙고 싶었다. 운명처럼 국회에 들어왔고, 법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업무 수행하면서도 수월한 부분이 많았다.
-국회에서 근무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법안은.
△1996년 입직 후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근무할 당시 동성동본 금혼조항 폐지, 한정승인제도 개선, 친양자제도 도입 등 민법 친족상속편의 개정안을 검토했던 일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친족상속편은 보수적인 시각과 진보적인 시각이 많이 대립하는 영역이었고, 좁혀질 것 같지 않은 의견들이 자꾸만 충돌했다. 그러다 법안은 2005년 마침내 결실을 봤다. 초기부터 검토에 참여했었기에 큰 의미를 가진다.
-국회 공무원들도 여야 간 대립이 첨예하면 퇴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직원들과 버틸 수 있었던 비결은.
△상임위에 있을 때 조사관들한테 퇴근 전 오후 5~6시까지 보고서를 달라고 했다. 그러면 아이들이 커서 야간 혹은 주말 근무가 가능한 제가 조사관들이 퇴근한 이후에 본다. 만약 수정할 내용이 있으면 조사관들이 다음 날 출근해서 볼 수 있도록 하는 식으로 시간을 배분했다. 한 달 내내 회의가 있을 때도 있었는데 그런 시스템을 가동하면서 서로 맞춰가니 조금은 일을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지난 국회에서 연금개혁 지원단장을 맡았다.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는지. 반대로 보람을 느꼈던 점은.
△연금개혁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 결과물을 내기가 쉽지 않은 영역이다. 연금정책은 소득보장 측면을 중시하느냐, 재정안정 측면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첨예한 의견대립이 있는 분야이고, 그래프 하나에 대한 해석도 어느 측면을 중요시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만큼 민감한 주제이기 때문에 어느 하나 쉽지 않았다. 그러나 2007년 이후 한 차례의 개혁도 하지 못했던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에 대한 모수개혁을 여야 간 그리고 이해관계자 간 일정 부분 합의를 이뤄낸 부분은 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보험료율에 대한 합의는 연금개혁을 위한 큰 걸음이었다.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은 없었지만, 여러 기관의 직원들과 협업해서 일했던 부분은 큰 보람으로 남을 것 같다. 22대 국회에서의 논의는 예단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 다만 21대 국회에서 일정 정도 합의가 된 모수개혁 부분과 추가로 합의를 끌어낼 수 있는 부분을 잘 논의해 신속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여야가 정치력을 발휘해 주기를 희망하고 있다.
-‘워킹맘’으로 일과 가정 사이 균형은 어떻게 맞추면서 커리어를 유지해 왔나.
△솔직히 일과 가정 사이의 균형을 잘 맞추지는 못했다. 아이들에게 신경을 쓰다 사무실이 기대하는 제 역할을 다 못하던 시기도 있었고,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와 가정의 필요를 못 본 척하다 아이가 아팠던 시기도 있었다. 법관이 무게추를 재듯이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까 싶다. 시소처럼 이렇게 갔다가, 저렇게 가면서 맞춰 가는 것 같다. 직장 어린이집인 국회 어린이집과 양가 어른의 도움, 보육 도우미 고용 등으로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버텼다.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일하는 엄마·아빠로 구성된 우리 가정의 정체성을 서로 돕는 공동체라는 생각을 했다. 엄마만 주된 양육자로서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이 각자의 성장을 위해 서로 돕는다는 개념이다. 최근 들어 여러 제도적 개선이 이뤄졌지만,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는 아직도 일과 가정 양립이 수월하지 않다. 이 시기를 버티는 데에만 목적을 두지 말고 육아의 즐거움을 느끼면서 일할 수 있도록 사회 전반적으로 시스템이 보완됐으면 좋겠다.
-국회 사무처 유리천장을 뚫었다. 고위직 여성 공무원은 더 늘어날 수 있을까. △처음 국회에 들어왔을 때 중간관리자 이상 여성 선배는 1995년에 입직하신 2명이 전부였다. 사무실 직원들 대부분이 남성이었던 1996년 낯설었던 사무실의 그 분위기도 생각이 났고, 현시점에서 처음으로 여성 정무직 공무원을 임명하는 것은 특별한 인사라는 것을 선명하게 인식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 여성의 사회적 참여 확대 등에 관심이 많은 우원식 국회의장께서 인사를 통해 메시지를 내신 것 같다. 여성 공무원들이 늘어나면서 여성 고위직 배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선진국도 유리천장은 존재하는데 유리천장의 해소는 누구에게나 더 좋은 사회가 되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유리천장이 깨지는 것은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평등지수가 높아졌다는 얘기이고, 조화로운 사회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국회 업무는 과중한 스트레스를 동반하는데. 이를 해소하는 자신만의 방법은. △스트레스가 대체로 일에서 오기 때문에 그 일을 잘하는 것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길이다. 제일 하기 싫은 일, 제일 어려운 일을 꾹 참고 먼저 했던 것 같다. 일이 쌓이기 전에 미리 처리하려고 노력한다. 저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일하는 방식을 바꿨다. 대면하고 싶지 않은 일이 생기면 도망가거나 피하기가 쉬운데 일단은 그냥 일을 시작해야 한다. 나중에 결과물이 좋지 않더라도 정면승부를 하고 나면 나로서는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가 없다.
-입법 활동 지원과 행정 업무 등을 준비하는 여성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일·가정 양립을 하다 보면 체력적인 부담 등으로 도전적인 일에 뛰어들기를 주저하는 마음이 생긴다. 여성들은 ‘내가 과연 저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면서 자기검열을 많이 하는 편이지 않나. 저도 그랬다. 하지만 자기검열의 순간에 일단 시작하고 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어떤 일이든 본인 앞에 왔다는 것은 본인이 그 일을 잘 처리할 후보자가 될 수 있는 역량이 있다는 뜻이다. 어렵고 힘든 일에는 일을 잘하는 사람들이 연결돼 있다. 혼자서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일단 시작하면, 조금 부대끼는 상황이 발생할 수는 있을지언정 성장해 있는 자신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진선희 입법차장은, 국회 사무처 입법차장. 최초로 임명된 여성 차관급 공무원이다. 1994년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96년 입법고시 합격 후 국회 사무처 법제1과 입법조사관으로 국회 생활을 시작했다. 교육위원회·기획재정위원회·보건복지위원회·법제사법위원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등 각종 상임위를 두루 거쳤으며 법제실과 관리국, 주 오스트리아 대한민국 대사관에서도 근무했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